허진호 감독 영화는 왜 개봉 때마다 다시 궁금해질까요?

요즘 극장 시간표를 보다 보면 허진호 감독 이름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신작 《암살자(들)》이 2026년 9월 23일 개봉했고,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로 9월 28일 기준 누적 관객 163만 명대를 넘기며 추석 시즌 화제작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을 단순히 ‘멜로의 거장’으로만 기억했다면, 이번 흐름은 꽤 흥미롭습니다. 멜로에서 출발한 감독이 역사극, 가족 드라마, 현대사 추적극까지 계속 이동해왔기 때문입니다.
허진호 감독을 먼저 떠올리게 한 영화들
허진호 감독의 출발점은 1998년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출연한 이 영화는 큰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곧 사라질 시간을 조용히 바라보는 방식으로 오래 기억됐습니다. 2001년 《봄날은 간다》도 비슷합니다. 유지태와 이영애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보다 변해가는 과정을 더 섬세하게 잡아냈죠.
사실 허진호 영화의 특징은 대사가 많지 않아도 감정이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인물이 크게 울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계절·빛·침묵·생활 소음이 마음의 온도를 대신 전달합니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작품은 다시 보면 더 느리게 보이고, 더 아프게 남는 편입니다.
멜로 감독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외출》, 《행복》, 《호우시절》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을 보면 허진호 감독은 사랑을 낭만으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불륜, 병, 이별, 회복처럼 현실의 조건이 끼어든 관계를 자주 보여줍니다. 솔직히 달콤한 로맨스를 기대하고 보면 꽤 쓸쓸할 수 있습니다. 대신 사람 사이의 거리감, 마음이 식는 속도, 붙잡고 싶은데 붙잡지 못하는 감정을 잘 잡아냅니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죽음을 앞둔 남자와 일상의 사랑
- 《봄날은 간다》: 사랑이 변하는 순간의 현실감
- 《외출》: 배신과 상처 이후 남는 감정
- 《행복》: 사랑과 병, 희망 사이의 균열
이 네 편은 허진호 감독의 감정 연출을 이해하기 좋은 기본 코스입니다. 빠른 전개보다 여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아직도 충분히 통합니다.
흥행 흐름은 《덕혜옹주》에서 크게 바뀌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전환점은 2016년 《덕혜옹주》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누적 관객은 약 560만 명으로, 그의 연출작 가운데 가장 큰 흥행 기록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을 극영화 방식으로 다뤘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관람 전에 알아둘 점도 있습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각색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쉬운 장면이 많은 대신, 실제 기록과 비교하면서 보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사극을 만들 때도 결국 관심은 ‘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안에 놓인 사람의 감정에 더 가깝습니다.
2019년 《천문: 하늘에 묻는다》도 비슷한 방향입니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권력, 우정, 신뢰의 균열을 따라갑니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허진호답습니다.
신작 《암살자(들)》은 어떤 위치에 놓일까요?
《암살자(들)》은 1974년 영부인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범죄 드라마입니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출연하고 러닝타임은 130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개 전부터 실제 현대사 사건을 다룬다는 점 때문에 관심이 컸고,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며 관객 반응도 빠르게 모였습니다.
관람 전에는 장르 기대치를 조금 조절하는 게 좋습니다. 단순한 액션 추적극이라기보다, 사건을 목격하거나 기록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허진호 감독 특유의 장점도 여기서 나옵니다. 거대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결국 화면 안에 남는 건 사람의 표정, 망설임, 침묵일 가능성이 큽니다.
근데 이런 방식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빠른 반전과 강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건 이후의 공기, 시대의 압박, 인물이 감당해야 하는 윤리적 부담을 보는 관객에게는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처음 본다면 어떤 순서가 좋을까요?
허진호 감독 영화를 처음 챙겨본다면 개봉순으로 달리는 것도 좋지만, 취향별로 나누는 쪽이 더 편합니다. 감정선 중심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먼저입니다. 역사 소재와 대중적인 드라마를 원한다면 《덕혜옹주》, 관계보다 사건의 무게가 궁금하다면 《천문: 하늘에 묻는다》와 《암살자(들)》이 맞습니다.
- 입문용: 《8월의 크리스마스》
- 감정 연출 확인: 《봄날은 간다》
- 대중 흥행작: 《덕혜옹주》
- 신작 관람 전 예습: 《천문: 하늘에 묻는다》,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크게 외치기보다 오래 남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극장에서 볼 때도 사건의 규모만 기대하기보다, 인물들이 왜 말하지 못하고 왜 늦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면 더 잘 보입니다. 신작을 보기 전 그의 예전 영화를 한 편만 고른다면 저는 여전히 《봄날은 간다》를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결이 낡지 않는 영화가 있고, 허진호 감독의 좋은 장면들은 대체로 그런 쪽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