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 변사는 극장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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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 변사는 극장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오래된 흑백영화 상영회에서 화면 옆 사람이 대사를 읽고 장면을 설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막을 대신 읽어주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같은 장면도 목소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무성영화 변사는 영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해설자이면서, 상영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공연자였습니다.

변사는 대사만 읽었을까요?

변사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화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연이나 감정을 말로 풀었습니다. 인물마다 목소리를 바꾸어 대사를 맡기도 했고, 외국 영화에 나오는 낯선 풍습을 관객에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자막, 성우, 해설자가 하는 일을 한 무대에서 함께 맡은 셈입니다.

그렇다고 화면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중계한 것은 아닙니다. 싸우는 장면에서는 말의 속도를 높이고, 이별 장면에서는 잠시 말을 늦추는 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같은 변사라도 상영 때마다 공연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영화의 화면은 같아도 누가 들려주느냐에 따라 관람 경험이 달라졌던 거죠.

무성영화를 ‘소리가 전혀 없는 영화’로 생각하면 당시 극장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필름에 배우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극장 안에서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렸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영화보다 변사를 보고 표를 사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 상설 영화관이 자리 잡으면서 변사는 상영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1920년대에는 주요 극장이 전속 변사를 둘 만큼 인기가 커졌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소개한 1929년의 극장 자료를 보면, 한 상영에 변사 두세 명이 번갈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인기 변사의 이름과 사진이 영화 광고에 실린 것도 이 시기입니다.

요즘 관객이 같은 작품이라도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면 다시 보듯, 당시에는 어떤 변사가 설명하는지가 관람 선택에 영향을 줬습니다. 변사마다 잘하는 분야도 달랐다고 합니다. 코미디를 능청스럽게 들려주는 사람과 비극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사람에게 관객이 기대한 재미는 달랐을 겁니다.

극장의 구성도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소개한 1929년 극장 자료에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연주하는 악단, 무대 옆에서 설명하는 변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영사기에서 나온 화면을 조용히 지켜보는 자리라기보다 영화와 말, 음악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공연장이었던 셈입니다.

왜 변사의 목소리는 사라졌을까요?

1930년대 초 소리를 담은 영화가 퍼지고 극장들이 음향 설비를 갖추면서 변사가 설 자리는 줄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로 꼽히는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은 1935년에 나왔습니다. 다만 그해를 경계로 변사 공연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성영화 상영이 이어진 곳도 있었고, 뒤에는 지방이나 임시 극장에서 변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남은 변사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당대 변사들은 영화 설명을 음반에도 남겼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1926년부터 1942년까지 영화 설명이나 장면을 담은 음반이 101장 제작됐습니다. 음반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 영화 전체가 아니라 주요 장면 위주로 녹음됐습니다. 필름이 사라진 작품을 떠올리는 데 이런 기록이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변사 공연을 볼 때 눈여겨볼 점

현대의 변사 공연을 만난다면 먼저 안내에 적힌 상영 형태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당시의 녹음 자료를 들려주는지, 오늘의 공연자가 화면에 맞춰 새로 해설하는지에 따라 기대할 경험이 다릅니다. 후자는 옛 상영 방식을 되살린 공연이지, 당시 극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생한 것은 아닙니다.

작품으로는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영화 <청춘의 십자로>가 좋은 출발점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장편 극영화로 알려진 이 작품은 변사와 라이브 음악을 곁들인 공연으로 다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변사가 언제 말을 보태고, 언제 화면만 남겨두는지 들어보면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변사의 말이 화면 감상을 방해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과 음악이 장면에 붙는 순간, 영화가 극장에서 어떻게 완성됐는지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오래된 작품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줄거리만큼 그날 화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될 듯합니다.

무성영화 변사는 극장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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