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크리스마스 영화는 달콤한 로맨스일까요?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영화를 다시 찾게 되는데, 제목만 보고 분위기를 짐작했다가 예상과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작품도 있습니다. 2019년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그렇습니다. 런던의 반짝이는 거리와 익숙한 캐럴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영화가 오래 붙잡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이 일상을 다시 꾸려가는 과정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나요?
케이트는 가수를 꿈꾸지만 오디션도, 인간관계도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 가게에서 요정 복장을 하고 일하면서도 정작 자기 생활은 돌보지 못하죠. 그러던 중 거리에서 톰을 만나고, 그의 권유를 따라 평소에는 지나쳤을 장소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만 알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소개하는 줄거리도 케이트의 잇따른 실수와 톰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뒤로 갈수록 새롭게 읽히는 부분이 있어서, 관람 전에는 자세한 해설이나 결말이 적힌 후기를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예고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출발점이고, 영화 전체의 감정은 그보다 조금 더 무겁습니다.
노래가 흐르는 로맨틱 코미디만 기대해도 될까요?
에밀리아 클라크와 헨리 골딩의 만남, 조명으로 빛나는 런던의 겨울 풍경은 분명 로맨틱 코미디의 모습입니다. 케이트가 일하는 가게의 화려한 장식과 두 사람이 거리를 걷는 장면도 계절 분위기를 충분히 살립니다. 다만 연애가 시작된 뒤 가벼운 소동이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중간부터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케이트는 과거에 큰 병을 앓은 뒤에도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합니다. 가족의 걱정은 부담스럽고, 친구들에게도 자꾸 실수를 합니다. 영화는 그 모습을 웃긴 장면으로 보여주다가도 케이트가 왜 사람들을 밀어내는지 천천히 드러냅니다. 그래서 톰과의 관계만큼 가족과 직장 동료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근데 이 변화가 언제나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케이트가 짧은 시간 안에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고, 주변 인물의 사정은 더 듣고 싶을 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로맨스의 설렘을 길게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전개가 아쉬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다정함이 꼭 연애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고 느끼고 싶다면 눈여겨볼 장면이 많습니다.
조지 마이클의 음악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제목은 왬!의 노래 ‘Last Christmas’에서 왔습니다. 영화에는 이 곡을 비롯해 조지 마이클의 음악이 흐르며, 단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의 쓸쓸한 정서가 케이트의 상태와 겹치고, 밝은 멜로디와 달리 어딘가 불안한 장면에도 어울립니다.
그렇다고 뮤지컬처럼 인물들이 노래로 대화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음악은 장면의 감정을 밀어주고, 케이트가 노래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익숙한 제목 때문에 원곡을 영화로 그대로 옮겼다고 예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노래에서 출발해 별도의 이야기를 만든 작품에 가깝습니다. 노래를 잘 모르더라도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엠마 톰프슨은 각본 작업에 참여했고 케이트의 어머니로도 출연합니다. 모녀가 주고받는 말에는 걱정과 짜증이 함께 묻어납니다. 케이트가 집을 피하는 이유를 단순한 반항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이 장면들 덕분입니다. 크리스마스 장식 사이에서 가족의 말다툼이 끼어드는 순간, 영화의 겨울은 엽서처럼 예쁘기만 한 계절에서 조금 더 생활감 있는 시간이 됩니다.
보기 전에 기대치를 어디에 맞추면 좋을까요?
가장 편한 기준은 ‘런던을 배경으로 한 겨울 로맨스에 회복 이야기가 섞여 있다’는 정도입니다. 폴 페이그 감독의 영화답게 케이트의 실수에는 코미디가 있지만, 아픈 경험 이후 예전처럼 살기 어려워진 사람의 마음도 함께 다룹니다. 톰이 등장한다고 케이트의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케이트가 스스로 무엇을 바꾸는지 보는 편이 이야기와 잘 맞습니다.
관람 후기를 찾을 때는 ‘반전 해석’이라는 말이 붙은 글에 특히 주의할 만합니다. 이 영화는 뒤늦게 알게 되는 사실이 앞 장면의 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미 내용을 아는 상태라면 케이트가 가족과 동료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해 다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눈에 들어오는 표정과 대사가 달라질 수 있겠죠.
저는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화면만으로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타인의 친절을 받는 일이 어색한 사람에게 작은 일상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함께 남았습니다. 달콤한 연애만 기대하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지만, 그 낯선 방향이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다른 연말 영화와 구별해 줍니다.
